◇◆혼란과 재앙의 신, 세트◆◇
세트에 대한 가장 유명한 일화는 그의 형제 오시리스를 살해하고 조카 호루스와 왕좌를 두고 싸웠지만 결국 패배한 이야기입니다.

세트는 자칼이나 흰개미잡이돼지의 머리를 가진 남성의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그의 탄생은 충격적이고 잔혹한데, 형 오시리스보다 먼저 태어나기 위해 어머니 누트의 옆구리를 찢고 나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 후로도 형 오시리스를 적대하며 갖은 술수를 동원해 그를 살해하고, 시신을 산산조각 내어 이집트 전역에 흩뿌렸습니다.
또한, 오시리스의 아들인 호루스와 왕좌를 두고 무려 80년에 걸친 싸움을 벌이며 호루스의 왼쪽 눈을 빼앗는 등 잔혹한 일화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패배하고 맙니다.
죽음에서 부활한 오시리스는 저승의 신, 승리한 호루스는 현세의 왕, 패배한 세트는 불모의 땅인 사막의 신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집트 역대 파라오 중 일부는 세트의 이름을 딴 왕릉을 남겼습니다. 세트가 단순히 악역으로 그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집트의 대표적인 군신◆◇
이집트 파라오들이 잠든 왕가의 계곡에서는 다수의 왕릉이 발굴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색鮮한 벽화로 유명한 것은 세티 1세의 무덤입니다.
세티 1세는 기원전 1279년에 사망했으며, 그의 이름은 세트 신의 군주라는 뜻을 가집니다.

벽화 속 세트는 생명의 상징인 앙크를 들고 파라오를 축복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세트는 "악"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지만, 세트의 이름을 딴 파라오는 최초로 확인된 인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혐오받는 이름"이 파라오의 이름이 되었을까요?
세티 1세가 즉위한 19왕조는 외국 세력의 침략이 빈번하던 시기였습니다.
평화로운 시기에는 오곡이 풍성하기를 기원했지만, 전쟁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압도적인 힘을 바랐습니다.
세트의 거칠고 강력한 힘과 전투에 대한 집념은 군신으로서 사람들이 의지하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신왕국 시대의 해외 원정 성공은 세트 신의 가호 덕분이라고 여겨졌습니다.
태양신 라가 항해할 때, 앞장서 악의 뱀 아포피스를 물리친 것도 세트였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는 세트가 왕의 이름과 연관된 사례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는 당시의 파라오가 어떤 신의 이름을 사용해 국민을 하나로 묶으려 했는지, 또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어떤 신을 의지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세트를 상징으로 삼던 세력이 쇠퇴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유적지에서는 얼굴이 훼손된 신의 모습도 발견되곤 합니다.
이는 전쟁에서 승리한 세력이 이전에 숭배되던 신을 제거한 흔적입니다.
문자가 널리 퍼지지 않았고 영상 기록도 불가능했던 고대에는, 다양한 전통과 관습, 동요나 이야기 형태로 역사와 문화를 전달했습니다.
신화 역시 그중 하나입니다.
신화 속의 초자연적 표현 뒤에는 실제 역사가 담겨 있다고 생각됩니다.
세트의 묘사 변화 속에서 이집트의 역사를 발견하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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